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 (문단 편집) === 어린 시절 === [[파일:4E7F4A6C-B26D-4ACC-AF4F-DCF7B9066DB4.jpg|width=500]] '너는 나의 것'이라는 말 그대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딸의 교육에 많이 관심을 쏟았다. 이는 시고모들인 루이 15세의 딸들 마담 아델라이드, 빅투아르, 소피가 거만하고 사람들에게 경원시 당하는 것이 엄격하지 못한 교육 탓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는 뛰어난 정치가이자 군주이긴 했으나 좋은 어머니라고는 볼 수 없었다. 많은 자식을 둔 집안에서 흔히 그렇듯이 아이들 모두가 어머니의 다정한 애정과 관리를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특히 가정보다는 나랏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상황 탓에 항상 어머니가 부재 중이었던 오스트리아 황실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나마 자식들을 귀여워했던 아버지도 마리 앙투아네트가 9세 때 일찍 사망했고, 마리아 테레지아는 부모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편애]]를 [[마리아 크리스티나(오스트리아)|한 자식]]에게 마구 쏟아부어 남매들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곤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머니를 존경하고 경외했지만 모녀의 정은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방치당한 것에 늘 불만을 가졌다. 이 때문에 고생했던 경험과 어린애들을 너무나 좋아하는 기질까지 더해, 딸과의 애정 어린 접촉과 엄한 훈육을 강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파일:83B3C994-4FA7-49CE-B61C-D8208CCACE1D.jpg|width=500]] 1786년의 마리 테레즈.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기에게 직접 모유 수유를 해서 친정에서 잔소리를 들었고,[* 모유수유를 하는 기간 동안엔 호르몬으로 인해 엄마는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 또한 육아의 피로도 영향을 줄 것이다. 예로부터 왕가 및 귀족들은 보다 많은 출산으로 안정적인 후계자 확보를 위해서 당연하게 [[유모]]를 두는 것이 관례였고 양육 노동도 생모가 직접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왕실도 마찬가지.] 마리 테레즈의 첫 가정교사는 프랑스의 명문가 로앙 게메네 가문의 게메네 공비였으나 앙투아네트는 [[가정교사]]로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폴리냑 백작부인 욜랑드 드 폴라스트롱을 들였다. 원래 왕족의 [[가정교사]]는 대귀족이 맡아왔는데 그녀가 자기 또래의 친구 폴리냑을 가정교사로 임명한 것은 많은 반발을 일으켰다. 평소 기부와 선행을 하는 것을 즐겼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딸과 함께 빈민 계급이 사는 곳을 방문하거나, 빈민 계급의 아이들을 초대하여 그들에게 마리 테레즈의 장난감을 선물하게 하는 등의 인성 교육도 했다. 1784년에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불 피울 장작도 없는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에" 그들을 돕기 위해 돈을 다 써버려 딸에게 신년 선물을 주지 못한 적도 있었다. 다만 아직 어린 그녀에게는 이런 것들이 불만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승마를 나간 마리 앙투아네트가 낙마해 크게 다쳤다는 것을 마리 테레즈에게 알렸던 메르시 백작(Comte de Mercy d'Argenteau)은 비록 어린 아이의 치기 섞인 말일지언정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마리 테레즈: '''나는 [[마리 앙투아네트|어머니]]가 더 많이 다쳤어도 신경쓰지 않았을 거에요.''' > >메르시 백작: 그건 공주님께서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이십니다. 그 말은 [[마리 앙투아네트|왕비 폐하]]께서 돌아가셨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분명히 공주께서는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시겠지요?” > >마리 테레즈: 알아요. 영원히 볼 수 없다는 뜻이죠. '''난 [[마리 앙투아네트|어머니]]를 영원히 보고 싶지 않아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딸에게 엄격했던 반면, [[루이 16세]]는 딸에게 지나칠 정도로 너그러웠기에 마리 테레즈는 아버지를 제일 좋아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것은 토라진 어린아이가 [[양가감정]]으로 "엄마 미워! 다시는 안 볼 거야!" 하고 투정을 부리는 정도의 발언이었고, 후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어머니와 강제로 떨어져 따로 감금된 마리 테레즈는 울면서 '너무나 좋으신 어머니, 죽지 마세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파일:3F2AD245-88E8-4F4B-A151-D777ECD45FDB.jpg|width=500]] 첫째 남동생 루이 조제프 왕태자와 함께있는 마리 테레즈. [[파일:AFFB90BB-57FF-4131-8C4F-178970A37B5A.jpg|width=500]] 둘째 남동생 [[루이 17세]]와 함께있는 마리 테레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